■ 키코의 위험

☞ 기초지식 : 옵션의 탄생, 옵션, 옵션의 손익, 키코

예쁜 꽃에는 가시가 있는 법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키코도 무서운 가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환율이 계약한 ‘800원~1,000원’을 벗어나면 계약이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계약조건은 이러했습니다.

● 환율이 1달러=800원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가 된다.
● 환율이 1달러=1,000원 이상으로 뛰면 1달러를 1,000원만 받고 은행에 팔아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계약이 무효가 되면 계약을 하지 않은 셈 치면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은 좀 찝찝합니다. 환율이 1달러=2,000원이 되든, 1달러=3,000원이 되든 무조건 1,000원만 받고 은행에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전문가가 환율하락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실제로 환율이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따라서 환율이 1,000원 이상으로 뛸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합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키코 계약을 한 그다음 날부터 환율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마의 1,000원 벽을 돌파하고, 1,100원→1,200원으로 폭등하고 말았습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믿었는데, 지옥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만약 키코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1달러를 팔고 1,200원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키코 계약 때문에 1,000원밖에 못 받게 되었습니다. 200원을 손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키코 계약에는 또 다른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율이 1달러=1,000원 이상으로 뛰면 계약금액의 2배를 1,000원에 팔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1달러를 은행과 사고팔기로 계약했다면 특별조항에 의해 2달러를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통장에 들어온 수출대금은 1달러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재주껏 나머지 1달러를 구해서 은행에 팔아야 합니다.

현재의 환율이 1달러=1,200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슴이 더욱 찢어집니다. 1,200원에 1달러를 구해서 은행에 1,000원만 받고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돈 200원이 또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무서운 계약입니다. 이익은 겨우 몇백 원이지만 손해는 거의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환율이 1달러=1만 원이 된다면 손해가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1달러만 팔기로 한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만 달러를 팔기로 했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키코에 의해 위기에 처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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