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옵션이란?
1월 1일, 농부아저씨와 농산물 수집상아저씨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나 계약을 했습니다. 올 가을에 배추 값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무조건 한포기당 1000원씩, 총 1만포기를 사고 팔기로 말입니다.
농부아저씨와 농산물 수집상 아저씨가 이런 계약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농부아저씨는 배추 값이 폭락할까 걱정이고, 농산물 수집상 아저씨는 배추 값이 폭등할까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배추 값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무조건 1000원에 사고 팔기로 미리 계약해두면 농부아저씨는 마음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산물 수집상 아저씨는 편안하게 가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말자 배추 값이 폭락해 한포기당 1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배추값이 이렇게 폭락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농부아저씨는 땡을 잡았습니다. 10원밖에 안하는 배추를 1000원에 팔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산물 수집상의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납니다. 10원짜리 배추를 1000원에 사는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도망이라도 가고 싶지만 계약을 했기 때문에 무조건 1000원에 배추를 사야합니다.
다음해가 되었습니다. 올해도 농부아저씨와 농산물 수집상은 작년과 똑같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농부아저씨는 ‘배추 값이 폭락하지 않을까’ 걱정이고, 농산물수집상은 ‘배추 값이 폭등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을에 배추 값이 어떻게 되든지 무조건 1000원에 사고팔기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농산물 수집상이 작년에 피를 봤기 때문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작년의 실수를 다시 할 수는 없습니다. 농산물 수집상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마침내 아주 근사한 방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농부아저씨와 농산물 수집상이 작년과 똑같은 계약을 맺는데, 아주 특별한 조건을 하나 붙이기로 한 것입니다. 계약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오기가 있는 놈입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포기당 2000원씩, 1만포기를 사고 팔기로 합시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저는 사고 싶으면 사고, 사기 싫으면 안 사도 됩니다. 하지만 농부아저씨는 제가 배추를 팔라고 하면 무조건 팔아야 합니다. 물론 제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특별보너스로 2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농부아저씨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이런 계약을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올 가을에 배추값이 한포기당 10원으로 폭락할 것이 확실히 예상된다면 기꺼이 계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농부아저씨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합시다.
이제 가을이 되었습니다. 만약 배추 한포기의 가격이 10원으로 폭락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농산물 수집상은 깨끗하게 200만원을 포기하면 됩니다. 생돈 200만원이 날아가는 것이 아깝지만 10원짜리 배추를 1000원에, 그것도 1만 포기나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배추 한포기의 가격이 만원으로 폭등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포기당 1000원에 배추를 살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면 됩니다. 다른 농산물 수집상은 배추 한포기를 만원에 사야 하지만, 이 농산물 수집상은 1000원에 살수 있으니 대박이 터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농산물 수집상이 가진 권리, 즉 배추를 1000원에 사고 싶으면 사고 사기 싫으면 사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어려운 말로 옵션이라고 합니다. 옵션을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선택권이 됩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권리를 행사해 떼돈을 벌면 되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보너스로 준 200만원을 깨끗하게 포기하면 됩니다.
하지만 농부아저씨는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특별 보너스 200만원을 받았기 때문에 농산물수집상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