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과 선물환

조선업체 사장님의 입장에서 보면 선물환거래는 참 좋은 놈입니다. 환율 걱정 없이 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달러를 무조건 1,000원에 사기로 한 은행의 입장에서는 생각만큼 선물환거래가 반갑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달러를 1,000원에 사고팔기로 조선업체와 계약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1년 뒤의 환율이 1달러=500원으로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되면 조선업체 사장님은 땡잡았습니다. 선물환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1달러를 500원에 팔아야 하는데 이제는 무조건 1,000원에 팔 수 있으니 땡을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5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1달러를 그놈의 계약 때문에 1,000원이나 주고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좋게좋게 생각하면 될까요? 대한민국 조선업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한 걸로 생각하면 될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은행도 엄연히 회사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행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정말 멋진 방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조선업체와 1달러에 1,000원씩, 총 10달러를 사고팔기로 결정하는 순간 은행은 재빨리 외국의 은행에 가서 10달러를 빌립니다. 그러고 나서 이걸 다른 사람한테 1달러당 1,000원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10달러×1,000원=10,000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돈은 은행창고에 가만히 모셔둡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면 조선업체 사장님이 찾아옵니다.

“여기 선박수출대금 10달러 가져왔어요. 달러당 1,000원에 산다고 했으니 총 10,000원주세요.”

이때 은행은 은행창고에 보관해두었던 10,000원을 조선업체 사장님께 건네줍니다. 그러고 나서 선박업체 사장님께 받은 10달러를 외국의 은행에 돌려줍니다.

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은행은 10원짜리 하나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환율이 1달러=500원이 되든, 1달러=100원이 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10원짜리 하나 손해를 보지 않고도, 조선업체 사장님께 선물거래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멋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은행이 바보는 아닙니다. 1년 동안 10,000원을 가만히 창고에 모셔두지는 않을 겁니다. 1년 동안 대출을 하면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1년 동안 이자를 받아먹고, 나중에 대출을 회수해서 조선업체 사장님께 10,000원을 주면 됩니다. 물론 10,000원을 주고받은 10달러는 외국은행에 송금을 해주죠.

조선업체는 환율변동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은행은 누어서 이자 먹고. 이렇게 오묘할 수가 없습니다.